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민병욱)는 2008년도‘1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추의 역사』등 분야별 도서 10종을 선정 · 발표했다.
2008년‘1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의 장편소설『사막』(르 클레지오/ 홍상희, 문학동네)을 비롯해, 시각문화와 예술작품 속에서 추(醜)의 역사를 탐색한『추의 역사』(움베르트 에코/ 오숙은, 열린책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열정과 긍정의 힘을 다룬『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헤더 레어 와그너/ 유수경, 명진출판), 현대판 이솝 우화집으로 평가할 수 있는『오래전 숲에서는』(마우로 코로나 글, 그림/ 이현경, 마루벌) 등이 선정되었다.
위원회는 문학, 역사, 아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좋은책선정위원회를 두고, 독서 문화의 저변 확대와 양서권장사업의 일환으로 매달 10종씩‘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선정하고 있다. 2008년‘12월의 읽을 만한 책’선정도서 및 추천사는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내용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홈페이지(http://www.kpec.or.kr)의 웹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 12월의 읽을 만한 책
○ 사막
○ 르 클레지오/ 홍상희 / 문학동네
○ 2008.10.27 / 480쪽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르 클레지오라는 소식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이미 세계인에게 원숙하게 다가와 있었다. 그의 데뷔작 “조서”는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에 번역되면서 세계 각국의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의 초기 작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는 “현대문명의 난폭함과 현대인의 정신적 공황”이다. 이에 맞서는 르 클레지오의 시선은 모든 주변부에 쏠린다. 중심바깥의 주변부에 생의 근원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더불어 그의 무기는 시 같은 문장이다.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시를 읽는 일과 다름없기도 하다. 광활하게 흩어져 있는 문명비판에 대한 이야기나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인의 삶을 살고 있는 인간들을 한곳으로 끌어와 조명하는 그의 문장은 어둠 속의 불빛처럼 빛이 난다. 책을 읽다 보면 “나의 조국은 모국어” 라고 했던 르 클레지오의 말이 실감날 것이다.
사막 또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서구 제국주의가 사하라 사막을 정복하게 되자 사막 민족들은 끝없는 유랑 길에 오르게 되며 겪는 수난사가 한 축이고 사막인의 후손인 랄라라는 한 사막소녀가 적십자단의 개입으로 프랑스의 항구 마르세유로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또 한축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숨 막히는 태양과 모래바람 속에서 살아온 랄라가 물질화된 도시에서 겪게 되는 삶을 통해 현대화된 문명이 어떻게 인간적인 것을 말살하는가를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막소녀 랄라가 호텔 청소부로 전락해 가면서도 버리지 않는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가장 참혹한 상황에서도 랄라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자로 부활한다. 잔혹한 문명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듯한 랄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나면 누구도 그 소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쉬운 문장, 빠른 서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르 클레지오의 사막을 소설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만큼 치밀하고 정교하며 진전이 느린 감흥이 깊다. 소설 속에 겹쳐 있는 수많은 공간과 묻혀 있는 시간들이 거슬러 옴도 동시에 느낄 것이다. - 추천자 : 신경숙(작가)
○ 초원의 전사들
○ 에릭 힐딩거/ 채만식 / 일조각
○ 2008.10.25 / 327쪽
세계사는 정주(定住)민족인 농경민족과 이동민족인 유목민족, 즉 기마민족의 역사로도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싸움은 유목민족이 승리했지만 유목민족은 오르콘비문(Orkhon Inscriptions)을 남긴 돌궐족이나 몽골, 만주(여진)족 등을 제외하면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후대인들이 그 실체를 알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유목민족에게 숱한 고초를 겪었던 농경민족은 붓으로 유목민족에게 복수했는데, 중국인들이 ‘오랑캐 노예’라고 부른 흉노(匈奴)를 로마인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야만족’이라고 묘사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유목민들이 때로는 정주민들과 교역하고 때로는 약탈했던 것은 모두 생존을 위한 것이란 점을 농경민족 국가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지만 『초원의 전사들』의 저자 에릭 힐딩거는 유목민족 내부의 내적 구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이 거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초원의 전사들』은 그 중 유목민들의 군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만주족에 관해 기술한 12장은 조선의 병자호란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우리 역사를 읽는 듯 생생하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훈족, 몽골족, 만주족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에 맞섰던 스키타이족이나 십자군과 싸웠던 셀주크(투르크)족의 흥망에 대한 기술도 흥미롭다. 우리는 스스로를 농경민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민족의 기원은 기마민족이다. 오랜 정착생활을 통해 농경성이 추가되면서 유목성(이동성)에 정주성이 가미된 독특한 민족성이 형성되었다. 우리의 잃어버린 반쪽의 민족성, 즉 유목성에 대해서 말해주는 이 책은 유목민족사의 고전인 룩 콴텐의 『유목민족제국사』와 함께 보면 금상첨화이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 추의 역사
○ 움베르토 에코/ 오숙은 / 열린책들
○ 2008.12.30 / 456쪽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 불쾌하고 추한 것의 역사가 미(美)의 역사보다 광대하고 훨씬 더 흥미롭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책.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이 미추의 개념이다. 미추의 역사만큼 시대의 변화상을 실감케 해주는 것도 별로 없다. 다만 그 동안의 예술사는 미의 개념에 집착한 반면 추의 개념에는 소홀했다. 이 책은 서양의 시각문화 속에서 형상화된 추의 현상과 그 뒤의 문화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작품이다. 그 입체성은 3중편집의 효과에 힘입어 아름다움을 띤다. 이 책은 추를 주제로 한 화보집이면서 시대별로 추의 개념을 대변하는 문학작품의 주요 대목들을 수집하여 그림과 함께 배열해놓았다. 에코는 복덕방 할아버지처럼 이 두 텍스트 사이를 오가며 구수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에코의 뛰어난 이야기 솜씨는 독자를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견으로 인도할 때 더욱 빛난다. 추의 역사는 미의 개념에 구속된 인간의 상상력을 더 넓은 세계로 해방해온 역사이다. 그것은 또한 도덕적 편견의 배후에 있는 공포를 극복하고 우리 안의 괴물성을 인정해온 성숙의 역사이다. 추를 예술적으로 재현해온 역사는 우리 안의 악마적 충동이나 일탈적 충동에 대한 방어의 역사이다. 이 방어의 역사는 가장 위험한 것 속에서 가장 역동적인 창조의 에너지를 끌어내온 승화의 역사이다. 문제는 이 역사도 새로운 주기로 들어서고 있다는데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미추가 대립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추한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아름다운 것이 추한 것으로 끊임없이 전도되는 분열의 시대.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이 시대가 미추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추천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
○ 헤더 레어 와그너/ 유수경 / 명진출판
○ 2008.10.24 / 287쪽
터부는 깨어지고 역사는 새롭게 씌어졌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대통령에 가장 소외된 소수민족인 아프리카계가 당선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과 관련해 현재 세계는 ‘오바마 열풍’을 앓고 있다. 미국의 유수한 전기 작가인 헤더 레어 와그너가 쓴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는 쏟아져 나오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전기 중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주로 ‘정치인 오바마’에 초점을 맞춘 대부분의 책들과 달리 ‘인간 오바마’에 초점을 맞추어 혼혈로 태어나 부모가 이혼을 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등 청소년 시절 많은 방황을 했고 열등감에 가득 찼던 한 아프리카계 소년이 수많은 벽들을 어떻게 뛰어 넘어 성공을 거두고 미국인들에게 ‘희망과 변화의 상징’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오바마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세계 모두의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해 오바마의 성장과정과 인생역정을 청소년들이 쉽게 읽고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책을 잘 구상하였다. 특히 획일적인 교육환경과 입시 지옥 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인생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인들의 경우도 세계의 지도자가 된 오바마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나아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의 삶을 돌아보고 희망을 갖기 위해 읽어 보아야 하는 좋은 책이다. - 추천자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배드 해빗
○ 잭디시 세스/ 김중식 외 / 럭스미디어
○ 2008.09.30 / 362쪽
“왜 좋은 기업들이 병들어 가는가?” 이것은 이 책의 필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의문이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낙오자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더군다나 요즈음처럼 IT산업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필자는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자기 파괴의 습관이 무의식중에 생겨난다고 본다. 그 동안 성공한 기업의 비결에 대해 쓴 책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처럼 성공한 기업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빚는 원인에 대해 분석한 책은 거의 없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성공을 향한 도전도 중요하지만, 성공을 이룬 다음 그것을 지켜내는 것 역시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사례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선 읽기가 아주 편하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기업들의 흥망성쇠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한때 업계를 호령하던 기업들이 잘못된 습관 때문에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소설과 같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 추천자 :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노명우 / 프로네시스
○ 2008.10.25 / 250쪽
1960년대 초 정부는 요즘 주공아파트처럼 텔레비전을 추첨 분양한 적이 있다. 몇 인치짜리를 적어내야 당첨율이 높을지 가족회의를 열었던 집도 많다. 그러던 텔레비전이 달동네 가정까지 보급된 후 최근에는 개인 소유물로 변신 중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평일 2시간, 일요일은 3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니, 그것은 실로 가족보다 더 친숙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텔레비전은 일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텔레비전이 켜지면 모두는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울고 웃는 동질적 대중으로 전락한다.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포드주의 시대를 대변하는 전형적 대중미디어 텔레비전은 피에르 부르디외와 같은 외국의 저명 학자들이 즐겨 다뤄온 문명비판 메뉴였다. 저자 노명우 교수는 우리는 왜 ‘바보상자’로 비하되는 텔레비전을 내치지 못하는가를 그들 못지않게 예리하고 명쾌하게 분석한다.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글로벌 이벤트를 각처로 신속히 전송할 수 있는 텔레비전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을 시청자로 끌어 모으고 있다. 이런 면에서 텔레비전은 종교문화권을 넘어서지 못하는 거대 종교의 영향력까지 초월하는 현대사회의 초대형 토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청자의 참여적 능력이 배제된 텔레비전이 민중적 발화구조를 지닌 뉴미디어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TV 쇠퇴론도 있다. 그러나 영리한 텔레비전은 진화를 거듭하며 위세를 더할 것으로 예견하는 저자는 텔레비전 앞에서 날로 초라해지는 현대인을 향해 “TV 안보기” 라는 비현실적 대응 대신 “말하기”라는 능동적 실천 방안을 취할 것을 권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지난여름 내내 텔레비전 앞에서 씨름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은 비판문화학자로서의 오랜 연공이 내재한 산물로서, TV 위에 얹어놓고 이따금 들쳐보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추천자 : 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신중한 다윈씨
○ 데이비드 쾀멘/ 이한음 / 승산
○ 2008.10.20 / 352쪽
18세기의 과학자로 뉴턴을, 20세기 과학자로 아인슈타인을 꼽는다면, 19세기의 과학자엔 누가 있을까. 바로 찰스 다윈이다. 하지만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비교하면 찰스 다윈은 왠지 평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일까. 사과가 지구로 떨어지는 것과 달이 지구 인력에 끌리는 현상이 같다는 사실을 밝힌 만유인력의 법칙, 자연 법칙이 관성계에 대해 불변이고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상대성 이론이 창의적 사고의 전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윈의 ‘종의 기원’은 어떠한가. 20여 년에 걸쳐 진화의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을 도출하면서 탄생한 ‘종의 기원’은 현재 생명과학은 물론 인문과학, 사회과학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창의적인 지적 산물이다.
다윈하면 제일 먼저 비글호 항해기를 떠올릴 독자들에게 이 책은 좀 낯설다.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 온 1837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윈이 항해의 성과를 정리하면서 생각이 어떻게 발전했고 그 당시 그의 주변에 누가 있었으며 생활은 어떠했는지를 스케치하듯 담아냈다. 오늘날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는 진화론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회 분위기에서 갈등한 다윈의 모습, 하지만 결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기록을 남긴 모습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자신이 얻은 정보를 종합해 새로운 지식으로 창출해낸 신지식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2009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읽어볼 만한 책이다. - 추천자 : 장경애(과학동아 편집장)
○ 파리로 간 한복쟁이
○ 이영희 / 디자인하우스
○ 2008.11.05 / 296쪽
재능이 있고, 눈썰미가 있고, 손끝이 명민한 한국의 여인네들이 어려운 시절을 건너오며 끈질기게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을 보는 일은 그 자체로 삶을 향한 절실한 기도를 보는 양 절로 그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70대가 된 이영희가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 인생이 바로 그와 같다. 지나 온 그녀의 한복 인생 길목 길목을 적어 놓은 이 책은 정감 넘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듯 따뜻하고도 올곧다.
어렸을 때, 안방에 옷감을 펼쳐놓고 옷을 지으시던 내 어머니의 옛 모습도 이영희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천연 염색의 형언할 수 없는 색감이 주는 아름다움이 한복의 재료로 쓰일 때, 이영희의 결심은 남달랐다. 외국에 나가서 본인이 한국 사람들에게 ‘한복 쟁이’로 비하될 때, 외국인들이 한복을 한복이라 부르지 않고 ‘기모노 코레’라 부를 때, 패션 쇼에서 홀대를 받았을 때, 훨씬 더 많은 돈과 정성을 들여 옷을 지어도 한국을 몰라 제 가치를 인정 못 받았을 때, 그 때마다 이영희는 결심의 결심을 한 한국의 여인이다. 그녀의 말을 빌면 “너희들이 너희 발로 와서 우리 옷을 구경하도록 해주마”가 그녀의 오기이자 자존심이었다. “내 옷이 내 자존심”이라는 그녀의 말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도 지켜주는 힘이 있다. 본인은 무시해도 좋지만 한복이 무시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그녀, 그녀의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 역시 존경스럽다.
이영희는 “한복(Hanbok)"을 고유명사로 쓰게끔 만든 장본인이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인 패션쇼에 소개 했으며, 뉴욕에 ‘이영희 한국박물관’을 열었고, 1994년 파리에 부티크를 열어 ‘파리에서 가장 예쁜 가게’에도 여러 차례 뽑혔으며, 드디어 2007년에는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에 그녀의 옷 12벌이 영구 소장되는 데까지 이영희는 쉬지 않고 걸어왔다. 2005년 APEC 정상회담에 온 세계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짓던 이영희, 간절히 원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소박한 한국 여인네의 진솔한 발걸음이 무한히 아름답다. ‘한복’이라는 고유명사를 넘어 그녀의 옷은 ‘바람의 옷’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 추천자 : 김춘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 빌 브라이슨/ 김소정 / 21세기북스
○ 2008.10.10 / 121쪽
글쎄, 저자와 같은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런 주제로 글을 쓰라고 했을 때 과연 쓸 수 있을까?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 원래 빌 브라이슨은 예측불허의 문체로 흥미진진한 여행기를 써서 영미권에서 이름을 날린 기자 출신 저술가다. 그런 그가 2002년 영국의 한 구호단체로부터 아프리카 여행을 제안 받았다. ‘케냐를 보고 와서 누구나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한 책’ 하나를 써줬으면 하는 의도였을 것이고 브라이슨은 썼다.
싸구려 영화에서 아프리카를 접해본 것이 전부인 저자의 첫 번째 아프리카 여행지는 케냐. 케냐의 나이로비행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읽게 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나이로비가 아프리카의 범죄중심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8일간의 일기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날(9월28일) 이야기다. 다음날 브라이슨 일행은 지도에도 없는 케냐 인근 빈민굴을 방문한다. 오물이 하천이 되어 흐르고 뙤약볕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양철지붕 집단주택은 사진만 봐도 그 참상이 느껴진다. 그 절망의 땅에서 그가 발견한 단 하나의 희망은 케냐 최고의 초등학교 8개 중 3개가 바로 이 빈민굴에 있다는 사실. 케냐에서도 교육은 희망이었다. 9월30일 일행은 ‘죽이는’ 기차를 타고 몸바사로 13시간 이동한다. 1년에 평균 100여 명씩 정체불명의 사고로 죽는다는 악명 높은 케냐의 그 기차도 아프리카다. 그러나 10월2일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더 죽이는’ 아프리카의 심벌 경비행기를 타고 난민 수용소 다다합으로 향한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난민 수용소 역시 교육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또 돈보다 돈 되는 기술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여행은 끝난 셈이다. 그의 의도가 노출됐기 때문. 아프리카정부는 믿을 수 없으니 믿을 만한 구호단체를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책읽기는 나름대로 유쾌 경쾌하다.
- 추천자 : 이한우(조선일보 기자)
○ 오래전 숲에서는
○ 마우로 코로나 글, 그림/이현경 / 마루벌
○ 2008.10.04 / 160쪽
우화는 ‘빗대어 풍자하는 이야기’로 『이솝 우화집』이 널리 알려져 있다. 우화에서는 동물이나 식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우화에서는 대개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식물의 생김새라든가 습성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바탕이 된다. ‘개미와 베짱이’를 예를 들면, 부지런히 먹이를 모으는 개미와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는 베짱이가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다가 어느 추운 겨울 날 베짱이가 개미에게 먹을 것을 얻으러 오자 개미는 베짱이를 문전박대하며 내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개미 같이 부지런한 사람’과 ‘베짱이 같이 게으른 사람’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개미 같이 부지런한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한 이야기 형식인 것이다.
『오래전 숲에서는』은 현대판 이솝 우화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숲속 동물들의 생김새와 습성만 보여주지 않는다. 여기서 그쳤다면 동물에 관한 논픽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동물의 생김새나 습성에서 착안하여 엉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 자기만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물론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그다지 신빙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작가 특유의 관찰력과 상상력이 돋보여 읽는 즐거움을 준다. 게다가 손수 그린 섬세하고 따뜻한 필치의 그림이 덧붙어 있어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오래전 숲에서는』을 보면 이야기에 개, 나비, 벌, 독수리, 지렁이, 거북이, 거미, 나무좀, 인간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온갖 동물이 등장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바로 이 책을 쓴 작가뿐 아니라 우리 누구나 관찰력과 상상력이 있으면,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의욕이 있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우리 민담에서도 나와 있듯이 ‘본 것도 이야기요, 들은 것도 이야기요, 체험한 것도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라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그리고 제멋대로 신나게 이야기도 만들어 보고 그림도 곁들여서 자기만의 이야기 모음집을 만들어 보면 더 좋겠다.
- 추천자 : 엄혜숙(아동도서연구가), 이상교(이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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