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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평구에 한국 최초 샤머니즘박물관 개관 [원문 바로가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6.03
[헤드라인/헤드라인] ◯ 서울의 유일한 국사당 “금성당” 의 재탄생! ◯ 우리나라 무속현장에서 쓰인 유물 및 히말라야, 몽골, 중국 샤먼유물 전시 ◯ 체험교실·교육프로그램 제공 등을 통한 문화저변 확대 은평뉴타운 아파트 숲 속에 고즈넉이 숨죽이던 한옥건물 금성당이 지난 5월 25일(수) 우리나라 최초의 샤머니즘박물관으로 탈바꿈해 개관하였다. 이날 개관행사에는 ‘사물놀이’ 개념을 처음 도입한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길놀이와 비나리를 통해 신명난 국악 한마당을 펼쳤다. 금성당은 단종복위 실패로 사사된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을 추모하는 국사당으로 2008. 7. 22. 국가중요민속문화재(제258호)로 지정된 곳으로, 이번 샤머니즘 박물관 개관을 통해 일반인이 쉽게 접하지 못했던 한국 및 아시아 토속 샤먼유물들을 금성당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 서울의 유일한 국사당 “금성당”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58호) 의 재탄생! 금성당은 2008년 은평뉴타운 조성 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은평구, 서울시, 문화재청이 힘을 모아 보존 결정을 했으며, 이후 보수 공사를 거쳤다. 은평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사당 문화재인 금성당에 대한 보존과 활용방안에 대해 학술대회(2015년 10월 8일)를 개최하여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금성당을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샤머니즘박물관”으로 재탄생하기로 하였다. □ 한국을 넘어 세계화로 나아가는 우리의 전통무속문화! 샤머니즘박물관은 민속학자 양종승 박사가 평생 수집한 샤먼유물 약 2만 여점을 보유한 보물창고다. 유물로는 무신도류, 신복류, 문서류 등 우리나라 무속현장에서 쓰인 유물과 다수의 히말라야, 몽골, 중국 샤먼유물 등이 있다. 그 외에 샤머니즘 및 민족신앙 관련 장서 그리고 무속현장에서 조사 채집된 영상자료, 음향자료, 사진자료, 공연행사자료 등이 소장되어 있다. □ 전통문화유산 활용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 앞으로 샤머니즘박물관은 향토문화 인문학 강의, 지화 등 체험교실 뿐만 아니라 전통무용, 탈춤, 국악기 공연 등 연희교실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전통문화공간을 시민들에게 전시·개방함으로써 문화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금성당을 활용한 샤머니즘박물관 개관은 은평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韓)문화체험특구’ 인프라 조성과 맞물려 은평구 방문 관광객에게 차별화된 한국 민속문화와 볼거리를 제공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금성당(錦城堂) - 우리나라 유일의 국사당(국가에서 직접 관리) ------------------------------------------------------------------------------------------------------------------- 금성당(錦城堂)은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신당(神堂)이다. 금성대군은 세종대왕과 소헌황후 심씨 사이에서 여섯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유(瑜)이고 7살 때 대군으로 봉해졌다. 단종(端宗)의 숙부 그리고 수양대군(首陽大君, 훗날 세조)의 아우인 금성대군은 성품이 강직하고 충성심과 의리가 많았다. 금성대군은 조카의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의 모함으로 1455년 삭녕(朔寧)으로 유배되었다가 광주(廣州)로 이배(移配)된 후, 영주 순흥으로 옮겨졌다. 금성대군은 이곳에서 부사(府使) 이보흠 등과 모의하여 단종 복위를 계획했지만 실패한 후, 31살 되던 해인 1457년 세조(世祖, 1417∼1468)에 의해 사사(賜死)되었다. 당시 순흥 마을 주민들은 금성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수천 명이 역적으로 몰려 숨지기도 하였다. 금성대군은 죽은 지 334년이 지난 1791년, 정조(正祖)가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할 때 육종영(六宗英)의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며, 영월 창절사(彰節祠), 영주 성 인단(成仁壇), 괴산 향사(鄕祠)에 제향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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